#1-2. [레이지모닝] 그들의 창업 이야기

# 무작정 떠난 전국일주

# 필리핀에서 총맞을뻔(?)

# 시청 앞에서 교동까지 오게된 사연


(현진, 사광) “ 지금 레이지모닝 매장이 총 7곳이 있어요.
처음 프랜차이즈를 생각할 때 우리가 통제 가능한 범위 정도로만 하고 싶었어요. 그 수를 10개 정도로 생각했고요.
빠르게 확장하기보다 지금은 우리의 철학을 지키는 범위에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레이지모닝을 검색하면 많은 다른 지점들이 나온다.
동대구역점부터 충남아산지점까지 전국에 자리 잡은 레이지모닝.
인스타그램에서도 각 지점들의 인기가 대단하다.
두 사람은 어떻게 지금의 레이지모닝을 만들 수 있었을까?



퇴사 후 전국 일주를 떠나다.


제과제빵을 전공한 두 사람은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갔다. 무조건 서울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결정한 서울행.
신촌에서 함께 자취를 하며 자리를 잡아 갔다.
(TMI - 두 사람의 자취 생활은 레이지 모닝 창업까지 약 7년 정도까지 이어졌다고.)
현진님은 대한 항공에서 케이터링 관리 일로, 사광님은 신촌의 한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사광) “ 서울 월세가 비싸잖아요. 그래서 현진이랑 둘이 자취를 시작했죠.
현진이는 전공을 살려 대한항공의 케이터링을 관리하는 쪽으로 취업을 했어요.
저는 커피를 더 배우고 싶어 홍대의 한 카페에 취업을 했고요.

같이 살다보니까 자취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어요.
각자의 일하는 곳 이야기 등 그러다가 우연히 창업이야기를 하게 됐었죠.”

(현진) “ 아 그때쯤인가? ”


두 사람은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사광님은 커피에 대해 더 배우고자 들어간 2층 규모의 커피숍에서 디저트 파트를 혼자 담당했다.
열악한 근무환경에 점점 더 지쳐갔고, 현진님 역시 직장 내 인간관계, 상사와의 어려움 등으로 업무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져가고 있었다.


(사광) “전 사실 커피를 더 배우기 위해 카페로 취업을 한거였거든요.
그런데 제 전공이 제빵이다 보니까 디저트파트를 제가 모두 담당하게 되었어요.
뭐 그런점은 카페를 위한 업무니까 괜찮았는데, 엄청 큰 규모의 카페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혼자 담당하다 보니까 업무량이 너무 많은거죠. 그런 곳은 특근 수당 같은 건 꿈도 못 꾸었구요.
파트타임을 구해달라고 사장님과 개별 면담까지 했는데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까 조금씩 매너리즘이 생긴 것 같아요.”

 

(현진) “저도 마찬가지에요. 회사에서 상사와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죠.
게다가 서울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희가 있던 지역은 빵 하나를 먹어도 각자가 먹은 걸 더치페이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어요. 서울 생활에 회의감이 몰려오던 부분이었죠.
어느 날 자취방에 누워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제가 지나가는 말로 우리 둘이 카페나 해볼까? 라고 이야길 꺼냈어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냥 일이 힘드니까 지나가는 말이었겠죠.”

 

(사광) “네 맞아요. 되게 가벼운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그 가벼운 말 속에 진심이 느껴지더라구요. ”

우연처럼 같은 시기에 매너리즘을 겪으며 둘은 창업에 대한 생각을 키워갔다.
"야, 술집이나 하자.", "나도 유튜브나 할까?"처럼 많은 이들이 직장 생활에 지쳐 한번쯤은 이런 하소연 섞인 말을 하곤 한다.
사광님은 가벼운 넋두리로 치부할 수 있었던 현진님의 이야기 속에서 진심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창업을 위한 전 재산을 둘이 합쳐 1300만원! '우리.. 창업할 수 있을까?'


Q. 첫 창업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사광) “카페창업을 하려고 둘이 돈을 모아보니 1300만원 정도가 되는 거예요.
저 300만원 그리고 현진이가 1000만원. 이 정도면 어느 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까 터무니없이 부족하더라고요. 여기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거죠.
여기저기 가족, 친지, 친구들까지 돈을 빌려서 4000만원 정도까지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 금액도 부족한 거 에요. 이 때 전국 일주를 떠났어요. ”

 

(현진) “전국에 정말 타이밍이 좋아서 운 좋게 시작 할 만한 자리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그래서 둘 다 퇴사하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전국 일주를 시작했습니다. ”


그렇게 두 사람은 '타이밍이 좋아 운 좋게 시작할 만한 자리'를 찾아 전국일주를 떠난다.



계약 파기, 홧김에 계약한 첫 카페 '로더'

무모하다고 해야 할까, 대단한 용기를 가졌다고 해야 할까.? 생각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26살의 현진님과 사광님은 그렇게 전국 일주를 떠났다.
서울, 대전, 부산, 광주, 대구, 포항. 특히 대전에서는 100개가 넘는 매물을 알아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가격과 위치가 좋은 곳을 발견해 계약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공사 시작을 앞두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 당했다.


(사광) “일단 창업을 결심했을 때, 돈이 너무 부족했어요.
여기저기 빌려서 3~4000만원은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 돈이면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한번 알아보니 턱도 없더라고요. 보증금에 권리금 내면 끝이었어요.
인테리어 공사도 해야 하고, 기계, 가구도 사야하는데 말이에요.”

 

(현진) “ 대전에서 100곳을 넘게 알아봤고, 계약까지 했는데, 계약을 파기 당하고 나니까 심적으로 많이 지치더라구요.
그 다음 행선지는 포항이었는데, 제 동생이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거든요.
동생을 만나려고 한 건 아닌데, 포항가는 김에 대구나 한번 들려보자. 하고 무작정 대구로 오게 되었습니다 ”

 

(편집장S ) “ 그럼 두 분 다 대구에 연고가 하나도 없으신데, 대구에서도 매장을 찾아보러 오신거예요? ”

 

(사광) “ 네 그렇게 대구로 오게 되었는데, 웃긴게 뭔지 알아요? 여기서도 한 번 계약을 했었어요.
그런데 거기도 계약을 파기 당했어요. 일방적으로요. 이렇게 되니까 조금 화가 나더라고요.
그때 제가 우연히 중앙로역 3번 출구 근처를 걷고 있었는데, 사람이 엄청 많은 거예요!”


어떻게 두 번이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 당할 수 있을까.
두 번의 계약파기로 둘은 조금 흥분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주 좋은 위치의 가게를 발견하게 되었다.


(사광) “ 그 때 중앙로 3번 출구 그 대로변에 좋은 조건으로 매장이 하나 나왔더라고요.
50평정도 되는 매장이었는데, 조건이 너무 좋은 거에요. 유동인구도 되게 많았거든요.
그래서 더 알아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을 했죠.”

 

(편집장S) “ 거기 알아요. 예전에 저도 가봤던 곳인데, 꽤 넓지 않나요? 크게 시작하셨네요.”

 

(현진) “하하 사실 매장이 너무 넓어서 저희 가벽을 세워서 좁게 만들었어요.
인테리어 공사비가 부족해서 다 사용 안하고, 일부러 좁게 사용을 했죠. 그정도로 돈이 없었어요.
넓은 공간을 다 사용하면 좋았겠지만, 그렇게는 못했죠.
돈이 많이 부족해 저희가 하나하나 공부하면서 인테리어를 했어요. 그 때 정말 많이 배웠죠.
그렇게 저희 첫 브랜드 카페로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

 

(사광)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해가 대구세계육상경기권대회 전년도였는데, 전야제 같은 행사를 했었나 봐요.
그래서 그 때만 잠깐 사람이 많았던 거에요. 카페 공사를 할 때 보니까 유동인구가 되게 적더라고요.
건너편 교보문고 쪽으로만 사람이 많고. 그때 아 큰일난건가 싶었어요”

 

(편집장S) “ 두 분이 편지도 주고 받았다고요? ”

 

(현진) “ 네, 그때 한달 월급이 50만원도 안됐어요. 가게에서 잠을 청할 때도 많았고요.
카페 때문에 우리 우정에 금이 갈순 없으니까, 우리가 만약 너무 힘들면 카페를 접자고 쪽지를 줬어요.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데, 지금은 못할 행동이죠 (웃음) ”

 

(사광) “ 그렇게 가게가 너무 힘들었어요.
6개월 쯤 되었을 때, 가게를 접을까? 했었는데, 현진이가 우리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하더라고요.
다음 해가 되니까 세계 육상경기대회가 열리고 매출도 조금 늘어 월급으로 100만원씩은 가져갔던 것 같아요.”



"지금 경험해 보지 않는 건 청춘에 대한 배신이야."

"젊을 땐 성공이든 실패든 해 봐야 하고,  그것이 값진 경험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첫 번째 브랜드 카페 로더에서의 경험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끼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했다고 한다.
모든 서류 준비를 마무리하고 비행기 티켓까지 구매 해 놓은 상태였던 과거의 두 사람. 


(사광)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매우 고민하고 있었어요.
당시 호주에는 베이커의 수요가 높은데,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실제로 비자도 받고 비행기 표도 사 놓은 상태였어요. 이제 가기만 하면 되는 거였죠.
이때 우연히 알게 된 한 사업가 분으로부터 필리핀 카페 컨설팅 제안을 받았어요.
필리핀에 약 80평정도 되는 카페를 차리려고 하는데, 컨설팅 의뢰가 들어온거죠.

(현진) 오픈을 같이 준비하고 첫 3개월 동안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이야기였죠. 사실 좋은 조건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광이랑 둘이 이야기를 조금 해보고, 저는 흘려듣고 호주 준비를 계속 하고 있었죠.
그런데 사광이는 고민이 많이 되었나봐요. 그때 사광이가 멋진 말을 남겼어요.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젊음에 대한 배신이다” (웃음) 라고 이야기 하더라구요.
그렇게 저희는 필리핀으로 가게 됩니다. ”


사광님의 멋진 말에 현진님은 호주행 준비를 접어두고 함께 필리핀으로 건너가 카페 오픈을 준비했다고 한다.
매장 위치를 알아보고, 컨셉을 정하고 공사를 하고 직원들 커피 교육을 한 뒤 오픈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사광) “ 사업을 제안해 준 행님(이하 행님으로 표현)과 함께 셋이 살고 있었는데요.
인테리어 공사가 길어져 오픈이 생각보다 늦어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오픈 하기 전 직원들에게 커피 교육을 먼저 시켜주자, 하고 집에 모여 커피 교육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행님이 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

(현진) “그때 행님이 같이 한인 식당에 밥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사광이가 직원들 커피 교육을 하고 있으니까 혼자 다녀오기 미안해 라면 끓여먹겠다고 집에 남아있었거든요.
그런데 거기 다녀오는 길에 행님이 사고를 당한거죠. 식당에서 나오는데 괴한들에게 총격을 당했다고 해요.
너무 무서워서 바로 한국으로 도망가자 해서 그 길로 도망을 오게 되었죠.
사실 여권도 그 행님이 가지고 계셔서 쉽게 올 수도 없었어요.
대사관에 연락을 취했고, 대사관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필리핀에서는 한인들의 총기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환전, 도박 등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원한에 의한 사건사고가 주를 이루는데,
공교롭게도 이 때 두 사람에게 사업을 제안해 주신 행님도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사건은 우리나라 매스컴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던 사건이었다.


(사광) 정말 혼비백산이 되어 한국에 돌아오니 빈털터리였어요.
컨설팅 돈도 못 받고, 호주 비행기 티켓도 날아갔구요.
부모님들은 당연히 호주 워킹홀리데이 허락을 해주실 리가 없었죠. 말 그대로 빈털터리가 된 상태였습니다.
어떻게든 다시 창업을 시작해야 했어요.


두 번의 창업 이후 필리핀에서의 살 떨리는 사건까지.
레이지모닝을 만나기 전까지의 과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다음 챕터에서 두 사람의 창업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레이지모닝을 만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그 뒷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로앨블랑, 도지마롤의 유행을 타다. 그리고 빼앗긴 상표권


필리핀에서의 사건 이후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빈털터리가 된 사광과 현진.

취업이던 창업이던 무엇이라도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둘은 두 번째 창업을 시작한다.


(사광)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떻게든 창업을 해야 했어요. 그렇게 두 번째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게 로앨블랑이에요. 로앨블랑은 프랑스어로 화이트크리스마스 라는 뜻이에요. 예쁘죠?
동성로 안쪽에 있는 카페였어요. 도지마롤을 팔았는데, 결과적으로는 장사가 잘 되었어요."

(편집장S) "왜 도지마롤을 하게 되신 거에요?"

(사광) 사실 급작스럽게 오픈을 하게 된 거거든요.
그러다보니 하고 싶던 걸 가지고 창업한 게 아니었고, 급하게 아이템이 필요했어요.
그러다가 일본 여행 중 인상 깊게 본 롤케잌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특이했어요. 도지마롤은 안이 크림으로 가득 차 있잖아요.
일본이 베이커리 쪽으로는 아무래도 유명하니까, 이걸 한번 팔아보자! 하고 만들게 되었죠.
로앨블랑은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저희 두 번째 브랜드가 생겼죠.

(편집장S) 그때 가진 돈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창업을 하신거에요?

(현진) 사실 이때, 돈이 거의 없었어요.
다행히도 첫 번째 매장인 로더를 운영할 때 부터 저희를 좋게 봐주신 분들이 좀 계셨어요.
그 분들이 저희를 믿어주시고 해서 투자를 해주셨죠.
그 때 저희가 도지마롤을 팔기 시작했는데, 우연히 한 달 정도 지나자 전국적으로 도지마롤 붐이 일어났어요.
정말 뜻하지 않게 장사가 잘 되었죠. 투자자 분들께 매월 배당금도 드릴 정도였어요.

(사광) 장사가 잘 되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상표권 문제가 생겼어요.
어떤 사람이 경주인가? 어딘가에 같은 이름으로 학원을 하고 있었나 봐요.
저희가 시작할 때, 로앨블랑이라는 베이커리는 없었고, 저희는 베이커리 카페로 시작을 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분이 로앨블랑을 제과점으로 상표등록을 해 버린거에요. 저희가 시작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로앨블랑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되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슈들이 있어서 장사를 접게 되었죠.
이때 그나마 장사가 좀 돼서 조금은 돈을 모을 수 있었어요.


꼭 하고 싶었던 매장을 시작하다. 크로와상

두 대표는 로앨블랑에서의 작은 성공이 우연이라고 말한다.
급하게 찾아 시작한 아이템이 인기를 끌었다고 말이다.
로앨블랑이 우연한 아이템에 따른 작은 성공이었다면, 레이지모닝은 두 대표가 평소에 고민해오던 것으로 시작한 매장이다.

(사광) 요식업계는 트렌드가 정말 빠른 곳이거든요.
그런 흐름에 상관없이 쭉 갈 수 있는 것은 뭘까? 했을 때 크로와상은 굉장히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 아이템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커피와 크로와상은 굉장히 잘 어울리기 때문에 언젠간 이걸 가지고 매장을 내보고 싶었죠.

(현진) 저희는 빵을 배우기 위해 매년 유럽여행을 가고 있어요.
유럽 여행을 가보면, 어느 카페를 가더라도 크로와상을 팔고 있더라고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페를 가봐도 커피와 크루와상, 빵오쇼콜라 이런게 항상 있었어요.
여기서 한 번 더 크로와상에 대한 확신을 하게 되었죠.

우리 장점 중 하나가 한 번 먹어보면 카피를 잘 떠요. (웃음)
유럽의 유명 카페 빵들을 직접 먹어보면서 한국에 들어와 하나하나 테스트하면서 그 맛을 구현하려고 노력했죠.

그렇게 크로와상을 메인으로 한 레이지모닝을 만들게 되었어요.


레이지모닝이 오픈할 당시에는 아직 제빵과 커피가 결합한 곳이 많지 않았다.
카페에서는 빵보다는 간단한 디저트, 케이크 종류가 많이 팔리고 있던 시기였다.
이번에도 운이 좋게 크로와상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 베이커리 카페와 크로와상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두 대표를 트렌드세터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데?)


이쯤되면 운이 좋다라기 보다 트렌드를 미리 읽었다는게 더 적합할 것 같다.
고객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한다면 자연스레 그들이 열광할만한 걸 내놓게 되는 것이다.
크로와상의 인기와 함께 시청 앞 레이지 모닝도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Q. 첫 레이지 모닝의 시작은 왜 시청 앞이었나요?

(현진) 저희가 2016년도에 첫 오픈을 했어요. 완전 시내는 아니지만 시내에서 가깝고, 임대료도 적당했고요.
우리가 볼 때 좋은 조건이었어요. 시청상권, 주거상권, 오피스상권, 시내상권 등 교집합을 이루고 있었죠.
주말에는 시청 주차장을 무료로 사용할 수도 있고요.
살짝 골목에 있어서, 자금이 부족한 저희에게 매우 적합한 곳이었어요.

 

(사광) 원래는 마루가 있는 국밥집, 도가니탕 집이었어요. 하지만 왠지 여기에 하고 싶더라고요.
우선 위치가 너무 욕심이 났어요. 그래서 계약을 했죠!

 

(편집장S) 매장이 매우 앤티크 하던데요?

 

(사광) 네 맞아요. 오래된 건물이었는데, 다 뜯어보니까 너무나 엔티크 한 거에요.
이걸 그대로 살리자! 그래서 복원작업에 힘을 썼습니다.
특히 입구의 아치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이걸 잘 살려보고 싶었어요.

이 곳은 편집장S가 시청 근처에서 자취를 할 때 우연히 지나쳤던 곳이다.
아주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이 때는 한 번도 가보지 않았는데, 몇 번 가본 사람처럼 동경하고 있었다.
실제로 주변에 레이지모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레이지 모닝을 취재하며 주변 지인들에게도 많이 물어봤는데, 이미 레이지 모닝에 대해 잘 알고 있거나 팬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레이지모닝의 팬들 중 대부분은 대구 시청 앞에 있을 때 부터 이미 레이지모닝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 레이지모닝에 대해 입을 모아 이야기 한다. "크로와상이 맛있는 곳!"이라고.
레이지모닝 취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교동으로 이전, 그리고 프랜차이즈


"저희 단골손님 중에 두번째 가게(로앨블랑)에서부터 연을 맺던 손님이 계세요.
이 분은 집은 서울이신데 주로 미국에 계신다고 해요.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대구까지 내려와 주시곤 해요.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었어요."

당시 레이지 모닝의 인기는 엄청났다.
조금 과장을 해 음악에 비유하자면 인디계의 대통령이랄까?
편집샵들이 생겨나고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의 매장들이 조금씩 생길 즈음,
시청 앞 레이지모닝은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도 안가본 사람은 없는" 그런 핫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시청 앞 레이지모닝이 영업을 종료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그리고 교동점에 다시 오픈하게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레이지모닝의 오픈을 기다렸다.


Q. 왜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나요?

(사광) “사실 장사가 잘되는 가게들이 이전을 하는 경우 중 가장 큰 이유는 집주인과의 불화에요. 저희도 사실 그랬죠.
문제가 많았어요. 그 당시 월세가 200이었는데, 300까지 올려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부동산법이 있어서 월임대료를 최대 5%까지 밖에 못 올리거든요. 말씀을 드려도 안통하더라고요.

저희는 그때 큰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월세를 올려드렸어요.
또 그 건물이 지하1층부터 지상4층까지 있는데, 저희가 손님이 많으니 모든 수도세를 내야한다고 하는 거에요.
뭐 그렇게 해드렸죠. ”

 

(현진) “ 어느 날은 수도세가 평소보다 20만원이나 더 나온 거에요. 이상하다 싶었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건물주분이 건물 옥상, 80평이나 되는 넓이에 텃밭을 가꾸고 계시더라고요.
이건 근처 높은 건물에 올라가서 저희 건물을 보고 알게 된 거에요.

이런 여러 가지 마찰이 있었어요. 정말 옮기기 싫었죠.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거든요.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옮길 수밖에 없었어요.”

 

(사광) “지금 그곳은 다른 매장이 들어섰는데, 아직도 그곳을 레이지모닝이라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인스타에 올라오고, 빵맛이 변했다는 분들도 계신데, 참 안타깝죠.
그만큼 그곳에서 오래 사랑받았는데 아쉬울 때가 있어요. 여러분 레이지모닝은 이곳 교동에 있습니다. (웃음)”

그렇게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지금의 교동 본점으로 이전하게 된 레이지모닝.
편집장S와 지인들이 항상 출퇴근길에 마주치는 지금의 교동본점.
어느 날 허름한 건물이 공사가 시작되어 과연 어떤 가게가 들어올까 궁금했는데,
공사현장을 가려주는 하얀색 천막에 <레이지모닝>이라 쓰여있었다.
그리고 출근했더니 사무실은 레이지모닝이 다시 생긴다는 이야기로 가볍게 흥분되어 있었다.



Q. 왜 교동으로 오게 되신 거예요?

(사광) "평소에 교동을 좋아했어요. 시내권이고, 옛스러운 분위기와 요즘의 분위기가 섞여 있다고 할까?
지금 이 건물은 원래 예전부터 지켜보고 있었어요. 제가 엔티크한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 건물이 딱이었어요. 언젠가 여기서 운영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오게 된 거죠.
정말 너무 좋았어요. 저희가 하나하나 직접 공사를 했죠.”


우여곡절 끝에 교동에 자리 잡게 된 레이지모닝과 두 대표.
그간의 고생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레이지모닝은 날개돋친 듯 전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전국의 곳곳에서 운영중인 레이지모닝.
다음 챕터에서는 레이지모닝이라는 브랜드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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